2025. 3. 7. 18:33ㆍ여행자의 삶
광화문 인근에서 일하던 시절, 부장님과 여러 번 갔던 '안성또순이'는 이후로도 자주 생각이 난 식당이다. 당시 나를 그 식당에 데려갔던 부장님은 이 식당을 좋아했지만, 사실 나는 이곳에 가는 게 마뜩치 않았다. 그 부장님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았던 게 컸을까? 명태 국물의 시원함을 알기에 당시 나는 너무 어렸던 것일까? 어쩌면 점심을 먹으러 가서 거의 1인당 소주 1병을 비워야 하는 우리 회사의 식사 문화가 싫었을 수도.
6년 정도 다니던 회사를 떠나고 난 뒤로, 나는 안성또순이를 갈 일이 없었다.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가끔 이 식당이 생각이 났다. 뭔가 보글보글 끓어대는 생태탕(생태가 안 나올 때는 동태를 쓴다고 한다), 사이드메뉴로 시켜먹는 여고생의 주먹만한 동그랑땡. 아주 한국적이면서도 아주 아저씨같은 그 맛이 그리웠다.
그러다 드디어 오늘, 모처럼 안성또순이를 가게 됐다. 그러고보니 왜 '안성또순이'일까? 식당에 가서 이런 이야기를 할 만큼, 친분은 없어서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런 걸 물어볼 만큼 넉살이 좋지 않은 게 더 맞을 수도.) 혹시 어떤 기자가 이곳을 취재하며 그 이유를 물어보지는 않았을까? 대충 찾아봐서 그런지 그런 질문은 한 것은 안 보였다. 나만 궁금해?
이곳의 생태탕을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솜씨 좋은 어머니들이 끓일 법한 생태탕 혹은 동태탕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표현이 그렇게 쉽지 않은 것 같다. 생태탕이 생태탕맛이지 뭐... 중앙이코노미뉴스에 나온 표현을 보자. 생태탕에 대한 설명은 없고, 식당 분위기와 사이드 메뉴만 설명해 놓았네, 어이쿠!
"40년 넘는 광화문 지킴이 식당으로 입구부터 고즈넉한 범상치 않은 단독주택으로, 특히 가을 분위기에 어울리는 생태찌개 전문점이다. 고추장 양념으로 숙성된 북어찜은 부드러운 맛과 양념이 과하지 않고 달지 않으며 하나하나 씹히는 오들오들한 식감이 좋아 막걸리(?)와 잘 어울린다. 여기에 육즙 가득 머금은 부드럽고 고소한 수제 동그랑땡과 같이 먹으니 바다와 육지의 조화가 입을 즐겁게 한다."
맛을 잘 모르는 내가 굳이 평가하자면, 뭔가 과하지 않은 맛이다. 아주 얼큰하거나 아주 맵거나 아주 짜지 않다는 뜻이다. 두부를 건져 먹어도 좋고, 버섯을 먹어도 좋고, 생선의 살을 발라 먹어도 좋다. 내 경우, 밥 한공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만 나와 함께 간 다른 일행들은 아주 천천히 밥공기를 비웠다. 그래도 "맛있다"고 했다.
아쉬운 점은 뭔가 여유롭게 먹기 힘들다는 점이다. 오늘은 그냥 손님이 많은 것 같지도 않았는데, 일하시는 분들이 동그랑땡을 다 먹고나니 바로 접시를 치워가셨다. 사실 예약을 해놓고 가니까, 탕도 미리 끓여서 우리 테이블에 두셨다. 같이 간 일행이 말하기를 "빨리 먹고 나가라는 뜻인가?". 천천히 먹을수록 그 맛이 더 사는 담백한 음식인 것 같은데, 이런 점은 아쉽다.
끝으로 생태와 동태, 명태는 대체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다. 명태의 유래와 여러가지 이름, 동태 생태 북어 건태 황태...명태 새끼는? 기사에 따르면,
"잡아서 바로 얼린 것은 동태(凍太), 얼리거나 말리지 않고 그대로 신선한 것은 생태(生太), 그냥 딱딱하게 말린 것은 북어(北魚) 또는 건태(乾太)라고 부른다. 또한 추운 곳에서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하며 말려 살이 연하고 노랗게 된 것은 황태(黃太), 명태의 새끼는 맥주 안주로 사랑 받는 노가리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복잡하다 복잡해. 맛있으면 됐지. 참, 가격표를 안찍었는데... 가급적이면 법인카드가 있을 때 가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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